
카페인은 줄이고 커피는 그대로…‘디카페인 전성시대’ 열린다
디카페인 커피 트렌드
# 카페인은 줄이고 커피는 그대로…‘디카페인 전성시대’ 열린다
4년 새 수입량 두 배 이상 증가…2030세대 중심으로 새로운 커피 소비문화 확산
맛과 향 개선되며 임산부·카페인 민감층 넘어 대중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정착
한때 디카페인 커피는 임산부나 카페인에 민감한 일부 소비자가 선택하는 대체 음료로 여겨졌다. 일반 커피보다 맛과 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커피 시장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카페인 섭취는 줄이면서도 커피의 향과 분위기를 즐기려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디카페인이 커피 시장의 핵심 상품군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는 물론 중저가 브랜드와 편의점, 대형마트, 온라인 유통업체에서도 디카페인 제품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 같은 매장 메뉴뿐 아니라 컵커피, 페트병 커피, 캡슐, 스틱커피 등 제품 형태도 다양해졌다. 디카페인이 특정 소비자를 위한 제한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따라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음료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디카페인 원두 수입량 사상 첫 1만t 돌파
디카페인 커피의 성장세는 수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디카페인 커피 생두와 원두 수입량은 연간 1만40t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만t을 넘어섰다.
2021년 수입량이 4,755t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약 4년 만에 2.1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최근 상반기 수입량 역시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2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디카페인 수요 증가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커피 프랜차이즈의 판매 실적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스타벅스는 2017년 디카페인 음료를 도입한 이후 누적 판매량 2억 잔을 넘어섰다. 최근 한 해 디카페인 커피 판매량은 약 4,550만 잔으로 전년의 3,270만 잔보다 39% 증가했으며, 디카페인 카페 아메리카노는 전체 음료 판매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판매량 증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디야커피의 디카페인 메뉴 판매량은 최근 조사 기간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으며, 투썸플레이스의 디카페인 커피 매출은 전년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메가MGC커피와 빽다방 등 중저가 커피 브랜드에서도 디카페인 메뉴 판매가 각각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디카페인이 일부 고가 커피 전문점에 한정된 메뉴가 아니라 국내 커피 시장 전반에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제품군이 됐음을 의미한다.
2030세대가 주도하는 ‘조절형 소비’
디카페인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주요 소비층은 20대와 30대다. 스타벅스의 경우 디카페인 구매 고객 중 약 60%가 2030세대로 분석됐다. 과거 디카페인의 주요 고객으로 임산부나 중장년층이 거론됐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변화다.
젊은 소비자들이 디카페인을 선택하는 배경에는 건강과 즐거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른바 ‘헬시 플레저’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커피를 완전히 끊는 대신 하루 동안 섭취하는 카페인의 양을 스스로 조절하는 방식이다.
아침에는 업무 집중과 활력을 위해 일반 커피를 마시고, 늦은 오후나 저녁에는 디카페인을 선택하는 소비 패턴도 확산되고 있다. 커피 자체를 포기하기보다는 시간대와 컨디션에 따라 일반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
저녁 시간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업무를 처리하는 소비자, 야근이 잦은 직장인, 수면의 질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디카페인은 유용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단순히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을 넘어 휴식과 대화, 업무, 취향을 위한 하나의 생활문화가 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소비 형태를 ‘시간대별 분리 소비’로 보고 있다. 오전에는 카페인의 각성 효과를 활용하고, 오후에는 카페인 부담을 줄이면서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는 방식이다. 자신의 생활 리듬과 건강 상태에 맞춰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커피 시장도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디카페인은 맛없다”는 편견도 옛말
디카페인 소비가 빠르게 확대된 또 다른 이유는 제조 기술의 발전이다. 과거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원두 고유의 향과 풍미가 함께 손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일반 커피보다 향이 약하고 맛이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물을 이용해 카페인을 분리하는 워터 프로세스와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는 추출 방식 등 다양한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공법은 카페인 함량을 낮추면서도 원두가 가진 산미와 단맛, 바디감, 향을 최대한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원두 선별과 로스팅 기술도 함께 발전했다. 과거에는 디카페인 원두라는 사실 자체가 제품의 핵심 정보였다면, 최근에는 원산지와 품종, 로스팅 정도, 향미 특성까지 세분화한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일반 커피처럼 디카페인 제품도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시장으로 변화한 것이다.
소비자가 디카페인 커피를 ‘참고 마시는 대체품’이 아니라 맛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하나의 커피 종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장 성장의 중요한 배경이다.
프랜차이즈부터 홈카페까지 선택권 확대
커피업계도 디카페인 수요에 대응해 제품과 서비스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주요 프랜차이즈는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 등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를 주문할 때 일반 원두를 디카페인 원두로 변경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원두만 변경하는 수준을 넘어 무카페인 차와 디카페인 에스프레소를 조합한 음료, 저당 제품, 식물성 우유를 활용한 메뉴 등으로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브랜드 광고와 디지털 캠페인에서도 디카페인을 주요 메시지로 내세우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가정에서 커피를 즐기는 홈카페 시장에서도 디카페인은 주요 제품군으로 떠올랐다. 캡슐커피와 스틱커피뿐 아니라 바로 마실 수 있는 컵커피와 페트병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커피 원두 대신 보리 등 곡물을 활용한 대체 커피 시장도 함께 성장하면서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싶은 소비자의 선택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단순한 유행 아닌 생활방식의 변화
디카페인 커피의 성장은 단순히 새로운 메뉴 하나가 인기를 얻은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생활시간을 고려해 카페인 섭취량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려는 소비문화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더 이상 일반 커피와 디카페인 가운데 하나만을 고르지 않는다. 중요한 회의가 있는 오전에는 일반 커피를 선택하고, 저녁 약속이나 휴식 시간에는 디카페인을 마신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두 종류의 커피를 함께 소비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커피업계에서도 디카페인을 제한적인 보조 메뉴가 아닌 독립적인 시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단순히 카페인을 제거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원두의 품질과 향미, 카페인 제거 방식, 제품의 다양성이 브랜드 경쟁력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페인은 줄이되 커피가 주는 즐거움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소비자들. 디카페인 커피의 확산은 건강과 취향, 일과 휴식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